1) 벌 독의 화학 작용과 침술의 물리적 작용을 결합
경락ㆍ경혈 벌침요법이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꿀벌이 자신의 보호무기로 가지고 있는 독침을 이용하는 자연요법으로, 벌의 독이 인체에 들어갔을 때 나타나는 화학적 작용과 체표에 침을 놓는 물리적인 자극작용을 결합시킨 자연치유 요법이다.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미 꿀벌의 독성과 약성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통해 벌의 독이 각종 류머티스와 관절염에 특별히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반면,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경락 체계를 이용한 침술을 발달시켜 왔다.
2) 꿀벌에 쏘여 사람이 죽는 경우 없다 벌침에 한두 번 쏘여 본 기억이 있거나 언론 등을 통해 벌에 쏘여 사람이 죽었다는 사고소식을 접한 사람이라면 벌침요법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벌침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거나 일반 양봉업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경우는 독성이 아주 강한 야생벌에 얼굴이나 목 부위를 집중적으로 쏘인다거나 (얼굴이나 목 부위는 약한 과민 반응에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 많은 양의 벌 독이 한꺼번에 투입됐을 때 또는 극심한 과로나 소화불량(급체)의 상태에서 독성이 강한 벌에 쏘였을 때만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헌데, 실제로 관련학계에 아직은 꿀벌을 치는 양봉업자가 벌에 쏘여 죽었다는 보고는 없다
벌침요법의 역사
서양에서의 역사
서양에서는 바빌론을 비롯해 이집트, 로마, 그리스, 페르시아, 에디오피아 등 고대의 문화적 유산에서 꿀벌과 벌꿀의 의학적 가치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는 부분들이 부분적으로 발견된다. 따라서, 인류 역사상 벌, 벌꿀, 벌 독을 사용한 정확한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수 천년 전부터 중요한 민간요법으로 내려온 것은 사실이다.
"의학의 아버지" 라 불리는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377)는 벌침을 사용한 기록을 남겼으며, 벌의 독을 「ATcanum」 즉 "대단히 신비한 약" 이라 불렀고, "실험적 생리학의 아버지" 라 불리는 그리스의 갈레노스(Galen, AD130∼200) 역시 꿀벌 및 벌꿀의 치료적 효과에 대해서 기록해 놓았다.
예를 들면, "죽은 꿀벌들을 가루로 만들어 벌꿀과 혼합하여 대머리나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는 부위에 바르면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난다." 는 것이다.
또한, 머펫(B.T Muffet)은 1658년에 저술한 『네발짐승, 뱀, 곤충계의 역사』 라는 책을 통해 「꿀벌이 벌집에서 나오자마자 잡아서 간 후에 다른 이뇨제나 포도주 또는 우유와 함께 마셔라. 그러면, 그것은 수증(水症, Dropsy)을 완치시킬 것이며, 요석이나 담석을 분해시키고, 요도관의 모든 통행을 열게 할 것이며, 방광의 모든 기능 장애를 완치시킬 것이며, 배가 쥐어짤 듯 아픈 것이나 심하게 뒤틀리는 것도 완치될 것이다. 벌꿀 속에 죽은 꿀벌들은 농액을 완치하며, 시력과 청력이 약해지는 것을 도와주고, 입술의 궤양을 낫게 해주고, 피하조직의 화농성 염증을 났게 하며, 혈액의 이상 유출을 낫게 해줄 것이다. 벌꿀은 위장의 응어리짐이나 얼굴의 붉은 여드름을 났게 해주는 것을 도와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의 기록에 의하면 벌꿀이나 꿀벌 자체를 약제로 사용하고 있다. 벌의 몸통 자체를 약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어쩌면 치유효과가 벌 자체라기보다는 벌이 몸 속에 지닌 벌의 독 때문이 아니었는가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어쨌든, 벌의 독, 즉 벌침이 등장하는 것은 로마 제국이래 서유럽에 최대의 제국을 세운 서유럽 황제이며 프랑스 민족의 왕인 샤를마뉴(Charlemagne, 742∼814) 황제가 봉침에 의해서 오랫동안 고생하던 통풍이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벌침이 모든 종류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벌 독의 치료적 성질이 대단히 중요시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에도 많은 기록들이 있지만, 근세이후에 들어 1858년, 불란서 의사인 아르댕(Desj ardins)은 봉독에 관한 최초의 학술 논문을 『Abeille MediCal(Medical Bee Journal)』에 발표했다. 그는 봉침을 사용해서 여러 종류의 류마티성 질환을 성공적으로 치료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기가 치유할 수 있었던 피부암의 두 증례도 보고했다. 이후, 1864년 러시아 페테르부르그(St Petersburg:현재의 레닌그라드)대학의 리포프스키(Libowsky)교수는『Courier Medical』에 류마티스열, 통풍, 신경통 및 기타 질환에 있어서의 봉독의 치료 효과에 대한 자신의 성공에 대해 발표했다.

1879년 오스트리아의 필립 테레(Dr philip Terc)는 꿀벌의 독소에 관해서 관심을 갖고, 류마티성 질환의 치료에 봉침을 체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장장 40년 간 풍습성과 류마티스성 환자 670명을 봉침으로 치료한 결과 84%가 완치되었고, 저효가 14%, 무효가 2% 였음을 학계에 발표하기에 이른다.
특히, 영국, 스위스, 독일 등에서는 풍습성 질환, 즉 류머티스성에서 오는 각종의 관절통 환자가 많아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동양에서의 역사 동양에서는 BC 163년 중국의 장사 마왕퇴에서 발견된 의서에 벌 독을 이용해 기운이 부족하거나 남성 성 기능 장애를 치료하는 구체적인 방법 사례가 기록되어 있어 벌 독의 사용이 이미 치료법으로 자리했음을 알 수 있다.
이웃 일본은 명치(明治)시대 초기에 양봉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벌침요법이 민간 요법차원에서 전승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세계 2차 대전 후 경제가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양봉 자체가 활성화되면서 벌침에 대한 관심도 함께 확대되어 1970년대에 처음으로 <벌침 요법 연구회>가 발족됐다.
우리나라에서의 역사는 길게 잡아야 39년 정도. 이후 일반 양봉가들에 의해 구전되어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법적인 보호가 모호하여 벌침요법의 연구와 임상이 활발히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나 일반 병ㆍ의원에서는 봉독 요법으로 환자들에게 시술하고있다. 봉독요법은 임상적으로 증명된 요법으로써 앞으로 선진국처럼 확산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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