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자료
웨스트민스터의 신앙고백
여주&토야
2007. 11. 19. 21:41
웨스트민스터의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이란 1647년 영국 웨스트민스터에서 모인 신학자와 목사들의 총회에서 승인된 신앙고백서로서, 스코틀랜드와 영국과 아일랜드에 있는 성공회(聖公會)의 개혁을 위하여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열린 교회회의에서 장로주의(長老主義)에 입각하여 제정, 채택한 신앙고백입니다.
그 이후 세계 여러 나라의 장로교회들은 이 내용을 성경에 계시된 기독교 신앙의 표준적 진술로 인정하였습니다.
그 이후 세계 여러 나라의 장로교회들은 이 내용을 성경에 계시된 기독교 신앙의 표준적 진술로 인정하였습니다.
1만 4천여 단어, 33장으로 된 이 장문의 신조(信條)가 성립되기까지에는 상당히 많은 논란이 거듭되었는데, 의회 승인은 1648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영향을 받아 정통적 칼뱅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일랜드 성공회의 신앙고백의 영향도 커서 그 후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의 장로파 교회에서 기본적인 교의(敎義)로 채택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영향을 받아 정통적 칼뱅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일랜드 성공회의 신앙고백의 영향도 커서 그 후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의 장로파 교회에서 기본적인 교의(敎義)로 채택되었습니다.
이 고백서는 고전적 신앙고백서로서는 최후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성서의 권위’를 교리해석의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형태는 참신하여 기존 신앙고백서의 전형에 구애됨이 없는 점이 특색입니다.
칼빈의 극단적인 절대예정(이중예정)에 관한 부분을 제외하면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형태는 참신하여 기존 신앙고백서의 전형에 구애됨이 없는 점이 특색입니다.
칼빈의 극단적인 절대예정(이중예정)에 관한 부분을 제외하면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영국 의회정치(議會政治)의 본거지인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입니다.
웨스트민스터란 서쪽의 대사원(大寺院)이란 의미로 ‘시티’(city)의 서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8세기에 교회가 있었으며, 국왕이 대관식(戴冠式)을 올리는 고딕 양식의 사원으로 긴 스테인드 글래스가 수없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란 서쪽의 대사원(大寺院)이란 의미로 ‘시티’(city)의 서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8세기에 교회가 있었으며, 국왕이 대관식(戴冠式)을 올리는 고딕 양식의 사원으로 긴 스테인드 글래스가 수없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에드워드 왕이 세운 교회로 실내는 여러 개의 예배당과 위인들의 관을 세워 놓은 묘가 있습니다.
영국 역대 왕(40명)의 대관식도 여기서 이루어 집니다.
유명인의 묘와 기념비로는 엘리자베스 1세, 윌리엄 셰익스피어, 챨스 디킨스, 조지 프레드릭 헨델, 참회왕 에드워드 1세, 윈스턴 처칠 등 입니다.
영국 역대 왕(40명)의 대관식도 여기서 이루어 집니다.
유명인의 묘와 기념비로는 엘리자베스 1세, 윌리엄 셰익스피어, 챨스 디킨스, 조지 프레드릭 헨델, 참회왕 에드워드 1세, 윈스턴 처칠 등 입니다.
1643년 7월 1일-1649년 2월 22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모인 영국 장로회(長老會) 총회는 종교개혁(宗敎改革)과 더불어 조직된 장로교회의 교회와 체제의 총결산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총회를 소집한 잉글란드 의회(국회)에 대하여 스코틀랜드 교회는 처음부터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유는 이미 스코틀랜드에서는 교회의 각종 예식서와 지침서를 장로교 원리에 의하여 제정한 다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총회를 소집한 잉글란드 의회(국회)에 대하여 스코틀랜드 교회는 처음부터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유는 이미 스코틀랜드에서는 교회의 각종 예식서와 지침서를 장로교 원리에 의하여 제정한 다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잉글란드 쪽에서 스코틀랜드 쪽의 신앙고백이나 체제적인면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용인하에 함께 모이게 된 것입니다.
이어서 양쪽에서 총대가 선정이 되어 스코틀랜드 쪽에서 사용하고 있는 헌장들을 중심으로 하여 영국 장로교회의 대헌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어서 양쪽에서 총대가 선정이 되어 스코틀랜드 쪽에서 사용하고 있는 헌장들을 중심으로 하여 영국 장로교회의 대헌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헌장은 세계 모든 장로교회의 헌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쪽에서는 이를 수시로 개정하여 독자노선(獨自路線)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7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 독노회의 설립시에 채택한 12신조의 서문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존중하여 그것을 받아들여 사용할 것을 명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쪽에서는 이를 수시로 개정하여 독자노선(獨自路線)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7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 독노회의 설립시에 채택한 12신조의 서문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존중하여 그것을 받아들여 사용할 것을 명시하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작성된 “신앙고백”을 비롯한 “대요리 문답”, “소요리 문답”, “공중예배 지침서”, “장로회 교회 정치 체제”는 영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 장로회의 헌장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 나라 장로 교회의 신앙고백서는 거의 원안을 따르고 있으나 “장로교 정치체제(政治體制)”만큼은 영국 것을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나라 장로 교회의 신앙고백서는 거의 원안을 따르고 있으나 “장로교 정치체제(政治體制)”만큼은 영국 것을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미국 것을 도입한 것도 아닙니다.
이 분야에 전문적이지 못한 선교사들이 급조한 것을 비판 없이 수용한데다 유리하게 변질시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어쨌튼 교회에서 카톨릭의 교권체제와 비슷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고, 거듭난 성도는 사람이 만든 어떤 권위에도 순종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에 전문적이지 못한 선교사들이 급조한 것을 비판 없이 수용한데다 유리하게 변질시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어쨌튼 교회에서 카톨릭의 교권체제와 비슷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고, 거듭난 성도는 사람이 만든 어떤 권위에도 순종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