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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람농장 대표 이양희씨 |
돼지는 시궁창에 뒹굴기 때문에 인간에게 지저분하다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사실 돼지는 굉장히 영리하고 깔끔한 동물이다. 또 예민하기 짝이 없다.
큰사람농장은 영리한 데다가 깔끔하기까지 한 돼지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한다. ‘돼지 팔자 상팔자’라 해도 좋을 정도가. 그렇게 키워진 돼지는 ‘죽어서도’ 최상품이다. 주요 백화점에서 큰사람농장 돼지고기는 최상급으로 팔린다.
유기농 퇴비 얻으려다가
큰사람농장 대표 이양희 씨는 “벼, 고추, 참깨 및 각종 특용작물을 재배하던 아버지도 복합농업을 하셨는데 순환농업을 위해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고 돼지를 기른 것이 큰사람농장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순환농업을 하려니 유기질 비료가 필요했다. 이 씨의 형인 원산농장의 이욱희 대표가 친환경 농산물 단지를 찾아다니며 유기농 퇴비를 구하려 했으나 찾기 힘들었고, 대부분의 농가에선 일본에서 수입한 퇴비를 쓰고 있었다.
낙엽을 긁어 퇴비를 만들기도 했지만 영양이 부족해 문제가 있었다. 돼지나 닭의 분뇨가 필요했지만 당시 국내에는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고 기르는 돼지나 닭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좋은 유기질 비료를 얻을 수 없었다.
결국 직접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는 방법으로 돼지를 기르고 그 돼지에서 나온 분뇨로 유기질 비료를 만들기로 했다. 이 대표는 “유기농 퇴비를 얻을 수 없는 현실을 보면서 얼마나 문제가 심각한지 알았다. 땅을 살리려면 무슨 방법이라도 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악취는 사라지고 곤충은 모이고
“저도 아이를 기르는데 아이에게 항생제는 특히 위험할 것 같아요. 약을 한 번도 쓰지 않은 아이들도 병원에 가면 약이 안 들어서 무척 고생하잖아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항생제 무투약 사육방법을 시작했어요.”
항생제 무투약 사육을 시작한 것은 2002년 7월부터다. 처음에는 일부 투약하고 일부 투약하지 않는 방법으로 사육하다가 10월부터 모든 단계에서 투약하지 않는 사육방법으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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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람농장에서 사육하는 무항생제 돼지 |
큰사람농장은 항생제를 쓰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분뇨 냄새를 없애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그래서 사육단계별로 적합한 분뇨처리시설을 장만했다. 이전부터 사용해 온 통풍식 발효시설 외에도 도드람양돈조합과 함께 분뇨처리시설을 설치했다.
큰사람농장은 고집만으로 항생제를 없앤 것은 아니다. 돼지는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약하다. 게다가 돼지는 돼지우리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집단 사육된다. 아주 작은 병균에도 치명적인 해를 입을 수 있다.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바꾸고 나서 농장에는 몇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우선 농장 주변에 풀이 무성해졌다. 제초를 위해 농약을 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지렁이가 많아지고 여치 같은 각종 곤충이 늘었다.
요즘 웬만한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반딧불이(개똥벌레)가 많아져 여름이면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놀러 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항생제의 대안 ‘벌침’
큰사람농장은 충북대 축산학과 조성구 교수와 함께 ‘벌침을 이용한 돼지 질병 예방 및 치료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고 벌침의 면역실험에 대한 결과를 도출해 내기도 했다. 벌침은 실제로 어미돼지 및 새끼돼지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벌침을 이용해 면역력을 높이고 집중시키는 한편 또 다른 면역증강체계를 강구했다. 항생제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정도로는 내성균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고 봤기 때문에 한층 강화된 천연면역증강제가 필요했다.
돼지가 설사를 일으켰을 때 처음에는 아기가 먹는 걸 먹이면 된다고 판단해 장의 활동을 돕는 정장제를 먹였다. 이제는 제약회사로부터 이 약의 원재료를 구입해 정장제 역할을 하는 유익한 미생물을 만들어 사용 중이다.
항생제를 쓰지 않은 돼지고기 맛은 어떨까. 큰사람농장은 농장에서 기른 돼지를 직접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식당을 차렸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을 먹고 자란 돼지이기 때문에 식당 이름은 ‘웃는 돼지’라고 지었다.
‘웃는 돼지’를 위하여
“돼지고기를 못 드시는 분이 있었어요. 돼지고기만 먹으면 설사를 하거나 소화를 제대로 못 시킨다고 했는데 저희 돼지고기는 먹어도 속이 굉장히 편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 돼지고기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항생제를 쓰지 않은 영향인 것 같다. 그럼에도 600g 기준으로 1만1000원 안팎에 판매되는 이 고기가 백화점에서 절찬 판매 중인 것은 좋은 고기, 안전한 고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큰사람농장은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은 돼지를 브랜드화했다. 동암BT주식회사와 협력해 ‘루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서울 유명백화점에 납품하고 있다. 이 이름은 프랑스 사상가 루쏘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멀리 내다보는 큰사람농장은 지난 2004년 도드람양돈조합과 공동으로 충북농업기술원에서 ‘무항생제 돼지사육 성공보고대회’를 개최해 국내외에 우리나라 양돈기술의 업그레이드를 알렸다.
그동안 항생제 오남용 문제는 축산계의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 각종 언론보도와 소비자 시민단체의 홍보로 인해 농민과 축산물의 안전성뿐 아니라 분뇨를 통해 토양과 하천이 오염되는 문제도 계속 제기됐다.
땅을 살리는 축산농가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돼지 사육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농가도 많다. 이 대표는 “항생제 무투약 사육법을 시작한 후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는 농가로부터 많은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 대표도 ‘항생제 신봉자’였다. 항생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 시기에 어떤 항생제를 사용할 것인지 아예 스케줄을 정해 놓고 투여했었다.
아직도 항생제를 투약하지 않는 데 대해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 폐사율이 높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 대표는 오히려 자신 있게 “항생제를 쓸 때보다 더 건강하고 더 잘 자란다”고 말한다.
무항생제 사육은 우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생물 배양시설로 가장 큰 골칫거리인 분뇨처리도 깔끔하게 할 수 있다.
큰사람농장의 항생제 무투약 사육방법을 배우고 동참하는 농가도 늘고 있다. 큰사람농장은 항생제 무투약 사육을 위한 영농조합을 결성해 이끌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 다살림영농조합 법인 이사로 재직 중이다.
충북 지역에는 도드람양돈조합에 돼지고기를 납품하는 10개 농장이 이 사육법을 시도했다. 지금은 충북 지역 전체 농가 중 25개 농가가 참여했다.
돈과 환경을 동시에
백화점에서 최고급 돼지고기로 팔리니 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돈만 보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돈을 버는 것만 목적으로 한다면 항생제를 쓰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기 쉽고 기타 중요한 것들을 소홀히 지나치기 쉽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육자의 의지다. 이 대표는 “돼지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가, 공생하는 생명체로 보는가에 따라 사육법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선한 공기, 물, 사료, 이 세 가지만 갖춰도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농장에는 곳곳에 커다란 현수막을 걸어 놨어요. ‘저희는 깨끗한 물과 사료를 좋아합니다’라고 써 붙였죠. 좀 유치하지만 직원들이 돼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해 주기를 바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