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농법

흙의 기능과 신비 (1) | 유기농법

여주&토야 2006. 9. 14. 16:41
토목학자나 건축학자들도 흙과 땅을 엄밀히 구별할 필요가 없다. 단지 지반(地盤)과 경사면(傾斜面)의 안정성, 골재로서의 가치, 물의 겉 흐름(流去)과 유출(流出)특성 등만 고려하면 된다. 일부 환경학자들도 흙의 물리적 여과작용을 이용한 정화기능만 고려해도 된다. 미생물의 활동은 실제로는 여기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토양 전문가나 농학도 또는 생태학도들이 보는 흙은 조화롭기 그지없고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는 동적인 자연체(Dynamic natural body)이다. 따라서 흙은 그 기능을 증진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쉽게 잃을 수도 있는 취약하고 신비로운 요술 램프이다. 흙의 능력과 가치는 불변적인 것이 아니다.


  새끼손가락 끝마디 만한 흙덩이 속에도 1억이 넘는 무수한 종류의 생명체(주로 미생물)가 살면서 쉴새 없이 제 몫의 직분을 다하려고 맹렬히 활동하고 있고, 때로는 심각한 생존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인간이 약간의 편을 들어주면 경쟁의 판도는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농학에서는 이러한 "편들기"를 경운과 정지, 시비와 흙 개량, 관개와 배수, 김매기와 멀칭 등등의 농업용어로 일컫는다.


  흙 속의 물도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여러 가지의 물질을 녹여서 생명체에 제공하거나, 운반하고 있다. 이는 비옥도 순환의 일부분이다. 겉흐름(유거), 속스밈(투수), 증발 등은 주로 흙에서 일어 나는 물 순환경로의 일부이다.


  농도가 짙은 물질은 흙 속에서 점차 위 아래로 펴져 서로 비슷한 농도로 되려고 한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둥근 물결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과 같다. 토양학자들은 이것을 확산(擴散)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물에서보다는 충격이 훨씬 가볍다. 왜냐하면 흙은 완충력(緩衝力)이란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 능력 때문에 생물들이 터전 삼아 마음놓고 살아갈 수가 있다. 흙은 포용력이 크고 관용스럽다. 마치 어머니의 인자하신 마음이나 조국의 품안과 같이, 완충력이 약한 수경액에 작물을 재배할 때에는 여러 가지 성분들이 항시 알맞도록 즉시 즉시 조절해 줄 수 있는 고성능의 값비싼 센서와 자동조절장치가 필요하다.


흙은 육지에서 일어나는 유기물과 무기물의 접촉면이다. 모든 육지식물은 흙에서 싹이 터 뿌리를 내리고, 자란 후 죽으면 흙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흙에서 자라는 동식물을 먹고 사는 인간도 흔히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흙 속의 생물들은 대기중의 질소와 탄소를 흙 속으로 끌어들이기도 하고, 태양에너지를 잡아채기도 한다. 즉 무기물을 유기물로 고정하면서 태양 에너지를 저장한다. 질소와 탄소순환의 핵심적인 신비는 흙 속에서 많이 일어난다.


서양사람들에게도 최근에는 흙의 기능을 넓게 보는 안목이 생겨나고 있다. 즉 근세까지는 흙을 단순한 농업과 삼림의 생산터전, 도자기나 의약품, 화장품의 원자재 공급원, 도로, 건물등 인간활동의 터전(사회간접자본), 여과(정화), 완충, 물질변환의 장소 등으로만 보아 왔다.


  금세기 말에 접어들어서야 흙은 문화유산의 보관창고이자, 역사의 연결고리이며,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는 심미안적인 인간심성의 안정제란 것을 터득하였다. 동양에서는 이미 수십 세기 전에 흙과 바위와 물과 풀, 나무들이 어울러져 이룬 경관을 수묵화로 즐길 줄 알았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흙과 흙이 이룬 지형이 생물종의 보존, 보호자이며 생물다양성의 주인임을 알아 차렸다.